성지에서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말씀 / 제단 뿔과 주님의 자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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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단 뿔과 주님의 자비
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20세기 후반, 명동 성당은 조계사와 함께 항쟁자들에게 성역(聖域)이 되어주 었습니다. 빅토르 위고의 소설 「노트르담의 꼽추」에는 성 당 종지기 콰지모도가 위험에 처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를 성당으로 끌어들여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. 이런 성역 의 존재는 구약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입니다. 당시에는 제 단에 달린 뿔이 피신처가 되어주었습니다. 이스라엘의 브 에르 세바와 므기또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제단이 이런 뿔 달린 형태를 보여줍니다.
므기또 유적지에서 발굴된 제단
제단의 제작 지침은 오경에 나옵니다. 그 가운데 탈출 20,25에서는 제단을 ‘다듬지 않은 돌’로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요, 정을 대면 그것이 부정해진다고 보았기 때 문입니다. 이는 제단을 자연 그대로의 돌로 만듦으로써 그 제사를 통해 자연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섬긴다는 뜻입니 다. 이와 관련해, 고대 유다 법전 <미쉬나>(미돗 3,4)는 다 음과 같이 설명합니다: “제단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 계를 화해시켜주는 구실을 하지만, 정의 재료가 되는 철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는 무기 제작에 사용되어 왔다. 화해 의 장소인 제단과 무기로 사용되는 철은 서로 융합될 수 없 다.” 그리고 제단의 뿔도 외부에서 만들어 갖다 붙이는 것 이 아니라, 처음부터 제단과 하나인 돌로 만들어야 했습니 다(탈출 27,2; 30,2).
제단의 뿔이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도피처가 된 데는 이유 가 있습니다. 우선, 제단은 성막과 성전 제사의 중심으로서 백성이 제물을 바쳐 죄를 씻는 곳이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당신을 백성에게 드러내 보이시던 곳입니다(레위 9,23-24; 1열왕 18,38 등). 이런 제단에서 주님의 힘과 자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 바로 뿔이었습니다. 뿔은 황소 같 은 짐승을 떠올려주는 표상으로서 힘의 상징입니다(신명 33,17; 예레 48,25). 시편 18,3에서는 하느님의 권능을 기 리며 주님을 “구원의 뿔”이라고 찬양합니다. 시편 132,17에 는 주님께서 “다윗에게 뿔(=힘)이 돋게” 해 주신다는 찬송 이 나옵니다. 이렇듯 뿔은 제단에서 신성(神性)과 힘이 깃 든 중심으로 여겨졌기에, 그것을 자르면 제단 전체를 파괴 하는 행위가 되고(아모 3,14), 그것을 잡으면 하느님의 자 비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. 이런 이유로 우발적 으로 살인했거나 억울하게 누명 쓴 이가 제단 뿔을 잡으면 주님의 용서와 보호를 바랄 수 있었습니다. 단, 흉계를 꾸 며 살인한 경우에는 그 뿔을 잡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(탈 출 21,14). 결국 제단 뿔은 구약 시대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공정하고 자비로운 성역이 되었습니다.
그러다 구원의 뿔은 신약 시대에 성자 예수님으로 육화(肉 化)하기에 이릅니다. 루카 1,69에 나오는 “힘센 구원자”를 직역하면 ‘구원의 뿔’입니다. 그리고 민주화 운동 중 위험 에 처한 이들을 명동성당이 보호해준 예에서 보듯, 뿔을 지닌 구약 시대 제단의 의미와 기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 게 되었습니다.
김명숙 소피아
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.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, 저서로는 <에제키엘서>와 <예레미야서 1-25장>, <예레미야서 26-52장>, <구세사 산책;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>가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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